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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레고그룹 본사 프로덕트 콘셉트 디자이너로 입사한 선지우 디자이너의 말이다. 그에게 레고 브릭은 취미가 아니라 다시 삶으로 돌아오게 한 도구였다.
한국 대기업 엔지니어에서 덴마크 레고그룹 본사 디자이너가 되기까지 길은 단번에 열리지 않았다. 발전 플랜트 배관 설계 엔지니어로 6년을 보낸 뒤 퇴사했지만 당장 화려한 제2의 인생이 열린 건 아니었다. 오히려 5년간 우울한 긴 터널 같은 시간을 보냈다. 무너진 시간을 지탱해준 건 반려견 포동이와 다시 시작한 창작이었다. 선 디자이너는 "그 무렵 저축은행 예금금리 우연히 레고 창작을 다시 시작했고 나만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은 놀라웠다"고 전했다.
2020년 브릭 아티스트로 활동을 시작한 선 디자이너는 레고 아이디어 플랫폼에서 세 차례나 1만표를 달성했고, 2023년 레고 하우스 챌린지에서 수상해 덴마크 전시로 이어졌 천만원 대출 다. 지난해에는 서울 청담동에서 개인전 '자유의 여정'을 열었다. 그는 담담하게 "덴마크 본사에서 제품 디자이너로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다"고 말하지만 그 뒤엔 축적된 시간들이 있었다.
레고 세트를 처음 접한 건 어린 시절 파라디사 시리즈다. 풍족하게 제품을 가질 수 없는 환경이었기에 부족한 장면은 상상으로 채웠다. 선 디자이너는 "돌아보면 우리v체크카드 통신비 나의 레고 놀이는 레고 세트 10%, 상상력 90%였다"고 회상했다. 상상력이 창작의 근육이 됐다. 대학에서는 공학을 전공했고 발전 플랜트 배관 설계를 맡았다. 그는 "지금 레고 창작에서 구조를 먼저 그려내는 사고방식은 엔지니어 시절 경험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전공과 창작은 처음부터 멀리 떨어진 영역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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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설명서대로 조립했지만 어느 순간 창작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커뮤니티에서 개인 창작물을 보고 가능성이 열렸다. 첫 작품은 인기 캐릭터들을 브릭으로 조립할 수 있는 브릭헤즈 스타일의 아기공룡 둘리였다. 즐거움에서 출발했지만 오래 붙잡게 만든 건 내 목소리가 담긴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좋아서였다. 한국철도공사 몰입하는 동안 마음이 차분하게 정리됐다. 선 디자이너는 "감정과 생각이 형태를 얻는 체험이 마음챙김이자 스스로를 돌보는 시간이었다"고 얘기한다.
아이디어가 막힐 때 그는 같은 질문으로 돌아간다. '왜 시작했나, 무엇을 담고 싶은가.' 질문을 되새기면 다시 손끝이 움직인다. 예전에는 힘든 순간이 곧 '싫어지는 순간'으로 이어졌지만 창작 후에는 힘들어도 좋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문제를 마주하고 푸는 주도성, 다시 시작하는 회복력, 자신을 들여다보는 집중, 감정을 다루는 태도까지 따라왔다.
작년 인천 송도에서 레고코리아와 진행한 어린이 클래스는 전환점이었다. 작품을 완성하는 활동이 아니라 감정을 나누는 경험으로 확장됐다. 그는 "행사가 끝난 뒤 몇몇 아이로부터 손편지를 받았을 때 깨달았다"며 "레고 창작이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는 언어가 될 수도 있음을 알았다"고 밝혔다.
영감도 번쩍이는 순간이 아니라 오래 머문 감각에서 올라온다. 스쳐간 감정과 공간의 공기, 색감이 쌓이다가 형태로 이어진다.
그래서 처음부터 완성형을 정하지 않는다. 표현하려는 감정이나 스토리를 먼저 떠올리고 문장으로 적는다. 그중 강조하고 싶은 포인트를 골라 확장해나간다. 감정이 먼저, 형태는 나중이다.
레고 창작은 결국 태도를 바꿔놓았다. 쌓여가는 브릭이 마음의 속도와 닮아 있었다. 완성보다 과정에 머무는 법을 익혔다. 선 디자이너는 "일상에서도 조급해하지 않게 됐고 내 속도를 믿는 연습을 하게 됐다"며 "레고 창작은 보여주기 위한 활동이 아니라 나를 유연하게 만드는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조립 과정은 감정의 순환과 닮아 있다. 작은 브릭에 집중하며 자신만의 리듬을 찾고 완성을 통해 스스로를 다독이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환기로 이어졌다. 지금 선 디자이너는 본사 성인 테마 팀에서 그런 감각이 누군가에게 전해지도록 고민한다. 그는 "내가 디자인한 제품이 누군가에게는 기쁨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조용한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놀이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잘해야 할 필요도 정답도 없다. 그는 "레고 놀이는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열려 있다"고 설명했다. 표현해본 사람은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진다. 꾸며지지 않은 상태에서 스스로를 드러내본 경험이 공감의 토대가 된다.
여행은 평소 몰랐던 감정을 깨닫게 하고 낯선 풍경에서 마주한 감각이 자연스럽게 작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리스 아테네 신전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기억이 대표적이다. 그는 "신을 기다리며 지붕을 떠받치던 기둥들이 폐허 속에서도 신념을 지키듯 서 있는 모습이 강하게 남았고 그 장면이 '신의 입성'으로 이어졌다"고 털어놨다.
그는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놀이를 통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디자인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나 자신에게 집중했다. 앞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와 디자인을 만들고 싶다. 형태보다 순간이 오래 남았으면 좋겠다."
[권효정 여행+ 기자 / 사진 조형주 여행+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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